
최문규씨는 자신이 쓰던 태블릿피씨에 직접 그림을 그려보이며 이야기를 끌어갔다.
‘대한민국 제 1호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얼리어답터(www.earlyadopter.co.kr) 사이트의 운영자이자 대표인 최문규씨(35)에게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는 얼리어답터를 운영하면서 주요 일간지와 잡지에 원고를 쓰고 있다. 최근에는 모 일간지에 만화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얼리어답터는 미국의 경제학자 에버레트 로거스가 ‘현신의 확산’이라는 책에서 처음 개념적으로 정의한 말. 얼리 어답터는 신제품이 나오면 먼저 사용해본 뒤 다른 사람에게 알려 제품 소비의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로 활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제품의 홍보 및 판매 확산 과정에서 얼리어답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한국에서 이 같은 얼리어답터 문화의 최선두에 서서 활동하는 사람이 최씨인 셈이다.
3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곳곳에 얼리어답터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구슬의 개수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디지털 사진을 펜던트처럼 넣어 보여주는 목걸이, 게임을 즐기며 운동할 수 있는 운동용 자전거 등 신기하고 기발한 물건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메모장 모양의 노트북을 화제로 꺼냈다. 그가 전자펜으로 스크린에다 쓱쓱 선을 긋자 먹펜으로 종이에다 그림을 그린 것 같은 느낌의 만화 캐릭터가 완성됐다. “보세요. 선이 살아 있죠. 종이 위에다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칩니다. 태블릿 피씨(tablet PC)라고 하는 겁니다. HP(휴렛 패커드) 제품이죠.” ‘레잇 어답터(late adopter)’에 가까운 기자는 ‘호오’하며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거 한 대 있으면 참 재미있겠네'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런데 만화도 참 잘 그리시네요.” “제가 잘 그리지는 못해도 전에 컴퓨터 사용법을 주제로 한 만화책을 펴낸 적이 있습니다. 초보자용 컴퓨터 사용법 소개 책인데...나름대로는 기대를 했는데 하나도 안 팔리더군요. 하도 속이 상해서 자비로 600만원어치를 서점을 돌며 산 적도 있습니다.” 사실 그는 만화책만 펴낸 게 아니라 컴퓨터와 인터넷 관련 서적 등 9권의 저자다. 그 중 몇 권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얼리어답터 사이트에 소개한 제품을 묶어 ‘아이디어 퍼 주는 스푼’이라는 제목으로 낸 책도 꽤 많이 팔렸다. 책만 많이 낸 게 아니다. 그는 연세대 건축공학과 시절에는 ‘한국건축전 신인부 대상’을, 95년에는 ‘유니텔 멀티미디어 홈페이지 대상’ 등을 받기도 했다. 조물주는 참 불공평하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재주를 몰아주시다니. 다음은 재주라곤 질문하는 재주밖에 없는 기자가 그와 나눈 일문일답.
어려서부터 얼리어답터 환경에서 자라...프로슈머 역할로 기업에 서비스

그는 "소비자의 눈 높이를 끌어올리면 제품의 수준도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어떤 일을 하는 건가.
얼리어답터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운영하면서 우리 회원들에게 신기하고 새로운 제품을 보여주고 왜 좋은 제품인지 알게 하는 거다. 또 제품의 트렌드를 읽고 LG, CJ, 소니코리아, 레인콤, 삼성전자 같은 기업에다 앞으로 무슨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짚어주는 역할을 한다.
-기업들에 제품개발 컨설팅을 한다는 건가.
개발자는 아니고 프로슈머(prosumer.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앨빈 토플러가 ‘제 3의 물결’에서 생산의 기획 및 개발, 유통 과정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소비자를 지칭한 개념)의 성격이 강하다. 얼리어답터의 감(感)을 근거로 어떻게 하면 좋은 제품이 나오고, 잘 팔리는 지에 대한 경험이 있으니 그걸 기업들에게 말해주는 거다. 중소기업 같은 데서는 제품을 직접 가지고 오면 어디를 보완해야 할지를 말해준다. 지금까지 컨설팅해준 중소기업은 20~30개가 넘는다. 컨설팅 의뢰가 들어온 건 훨씬 많다.
-최근에 컨설팅해준 사례가 있으면 얘기해 달라.
미국 아이비리그 나온 유학생들이 어느 날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왔더라. 미국에서는 바퀴 달린 가방을 많이 끌고 다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걸 만들어 팔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알아보니 우리나라에서 끄는 가방이 없었던 이유가 도로사정이 굉장히 안 좋아서 그런 거였다. 도로가 울퉁불퉁하다 보니 바퀴가 깨지기 쉬웠던 거지. 그래서 바퀴를 롤러블레이드처럼 튼튼한 걸 달라고 조언해줬다. 그게 ‘휠팩’이라는 것으로 나와 지금 많이 팔리고 있다. 그 제품이 유명 홈쇼핑을 통해 팔릴 수 있도록 마케팅에 관한 컨설팅도 했다.
-스스로 타고 난 얼리어답터라고 생각하나.
나보다 아버님이 더 얼리어답터 기질이 강했다. 아버님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링에서 이사를 지냈던 분이다. 아버님이 여러 가지 최신 물건을 사는 걸 좋아해 집안에 각종 가전제품 등이 최신을 유지했다. 텔레비전과 비디오도 동네에서 처음 집에 들였다. 아버님이 사진에도 굉장히 조예가 깊으신 분이다. 지금도 웬만한 TV를 해체했다 조립도 하실 정도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최신 제품을 사용하고 만져보는 게 너무나 당연한 환경이었다. 어려서부터 제품을 분석하고 비교도 하다 보니 중고교 때나 대학에서든 주변 사람들이 나한테 꼭 물어보곤 했다. 삼성 다닐 당시 PC 조립 붐이 불었는데 사람들이 하도 물어봐서 업무에 심각한 지장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인사팀에 부탁해서 아예 컴퓨터 조립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할 정도였다.
-이 일을 직업적으로 하게 된 계기는 뭔가.
대학 때도 미국에 유학나간 친구들에게 최신 제품을 항상 받아봤다. 자금은 죽도록 아르바이트 해서 벌거나 제품을 받아서 중고 되기 전에 파는 식으로 해서 마련했다. 이게 직업이 된 계기는 우연한 거였다. 매형이 미국 교수인데 당시 박사 과정에서 얼리어답터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 매형이 ‘바로 네가 얼리어답터다’고 해서 내가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뒤 삼성엔지니어링에 입사해 5년정도 다니다 나와 2000년 다른 업체의 웹 페이지를 만들어주는 웹 에이전시(이바닥)를 시작했다. 그 일을 하면서 향후 비즈니스로 할 수 있는 아이디어 5개 정도를 구상했는데, 첫 번째 것이 얼리어답터였다. 이 사업이 커지다 보니 나머지는 못하게 됐다.
사실 그가 전공인 건축에서 얼리어답터로 ‘전향’한 데에는 꽤 알려진 사연이 있다. 95년 그가 지금의 아내인 배주은씨 부모님에게 결혼 승낙을 받으려 하자 장모가 반대하고 나왔다. “건축학과 출신은 싫다”는 거였다. 최씨는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당시 유니텔이 주관한 멀티미디어 홈페이지 경진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았다. 대상을 받은 뒤 한 일간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장모에게 보이고 나자 장모의 대하는 빛이 조금씩 달라졌다고 한다. 그의 장모가 아니었으면 그는 아직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문규씨가 일본 메이아덴끼의 손 꺾는 소리가 나는 제품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우리 기업의 제품 수준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될 것 같은데.
제품에 대한 애정이 많아지고 웬만한 제품들은 대부분 써보기 때문에 어떤 제품이 진짜 좋은 제품인지 알게 된다. 제품에 미쳐 살다보니 느끼는 게 많다. 그 중 제일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는 제조업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나라라는 거다. 그런데 자국 시장이 없다. 소비가 미덕이 아니다 보니 그렇다. 나 같은 사람을 보면 다들 주변에서 월급이 얼마인데 그렇게 사대냐고 다들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소비가 미덕인 나라가 돼야 나라가 잘 산다. 소비를 해야 공장이 돌아가고 신상품이 나오고 돈이 회전된다. 소비가 미덕 아닌 분위기는 굉장히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지금 지는 나라라고 하지만 제조업으로 몇 십년 해먹었다. 나는 일본 다음이 한국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으로선 일, 이 년도 못 해먹을 판이다. 중국 게 안 좋은 물건이라고 다들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중국 물건들 좋은 건 아주 좋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기면 다시는 선두 못한다. 우리 제조업이 확 살아야 한다. 국내의 소비와 빠른 유행 흐름을 타고 개발된 핸드폰이 해외에서도 잘 팔리듯이 모든 제품이 이런 식으로 돼야 일본 다음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할 일이 너무 많다. 우선 소비자들의 안목이 높아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소비자들은 너무 주관이 없다. 자기에게 맞고, 좋은 제품을 사는 안목이 없었다. 내가 하려 한 게 그런 일이다. 우리 소비자들에게 진짜 좋은 물건이 뭔지 보여 주자.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그 눈높이를 맞추자면 기업도 좋은 제품을 만들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제품의 전반적인 수준이 올라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거다. 지구상에 우리나라처럼 중소기업이 기 못 펴는 나라는 없다. 중소기업들의 제품 아이디어는 좋은데 제품을 꽃 피워낼 수 있는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없다. 우수한 중소기업 제품을 발굴해서 시장에서 꽃 피울 수 있도록 코치라도 하자고 얼리어답터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동호회 사이트로 출발했는데.
처음엔 긴가 민가 했다. 얼리어답터가 얼마나 있을까 한 번 모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2001년 8월에 사이트를 열었는데 일파만파로 너무 커졌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니 그동안 얼리어답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주눅 들어 살았던 것 같다. 이 사람들에게 파이어니어의 역할이 있다고 하니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사이트를 운영하다 보니 분위기가 도를 넘어 내가 거의 ‘교주’처럼 되는 걸 느꼈다. 이메일이 하루 500 통이 넘게 오기 시작했는데 심지어 어떤 여자를 계속 사귀어야 하는지를 내게 물어봤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다. 결국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이 제품이 가진
문화가 뭔지를 짚어보고 싶었다. 웃기면서도 안타까운 예인데 인터넷에 연결해서 개에게 밥을 주는 장치를 개발한 업체가 있는데 65만원 짜리 그 제품이 국내에서 겨우 8개가 팔렸다. 결국 그걸 일본 후지쓰에 팔았는데 후지쓰는 NTT(한국통신과 같은 일본의 기간통신사업자)와 함께 그 제품을 130만대나 팔았다. 제품을 사용하는 배경문화를 잘 읽어내느냐에 따라 제품의 붐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된다.
일본에 ‘메이아덴끼’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가 만든 게 24시간 노크 소리나 박자 맞추는 소리를 나게 하는 ‘노크맨’ ‘비트맨’을 만들었다. 하루 종일 손 꺽는 소리 나는 기계를 만들기도 했다. 이 회사 모토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만 만들자’는 거다. 그런데 이게 팔린다. 사람들이 재미로 사는 것이다. 이거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이 회사가 토이 쇼(toy show)에 참석하느냐 여부에 따라 몇 만명 인원이 왔다 갔다 한다. 쓸데없는 건데 참 잘 만들었다. 이 회사는 제품에 자기 색깔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컨설팅 해달라고 해서 만나보면 MP3플레이어 만드는 사람이나 김밥 납품 하는 회사나 모든 과정이 똑같다. 자기 색깔이나 독창적 아이디가 없다. 대기업, 심지어 삼성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색깔, 아이덴티티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삼성도 색깔이 없다고 했는데 일본 회사와 비교해서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삼성이 소니를 이겼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소니 한창 때 제품을 보면 그래 이게 소니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소니의 광고 문구가 ‘잇츠 소니(It's Sony)' 아닌가. 그 문구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사람들이 써보면 자연스레 그런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이게 삼성이야’ 하는 제품이 어디 있나. 삼성 제품이 잘 팔리지만 ‘그래, 삼성 최고야’ 하는 게 없다. 약간은 장인 정신 같기도 하고, 하나에 미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색깔 같은 건데, 이런 건 죽도록 외국 것 벤치마크해서 베끼는 방식으로는 절대 안 나온다. 자기 색깔을 내는 회사는 잘 된다. (국내에는 그런 회사가 없느냐고 묻자) 아이리버 같은 회사가 그런 걸 잘 한다. 삼성도 그런 게 일부 제품에는 있다.

-한국 경제가 잘 되려면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기업이 많아야 한다는 건가.
색깔이 뚜렷한 기업들이 대부분이어야 우리 경제가 산다. 우리가 가진 자원이 결국 사람뿐인데 그런 사람들을 활용해 좋은 제품 만들어서 세계에 뿌려야 한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이 진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코치를 해줘야 한다. 미국도 그렇고, 일본은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그렇게 돼 있다. (자신이 쓰고 있던 태블릿PC를 가리키며) 무척 속상한 게 이것도 HP에서 출시하지만 LG에서 기획과 디자인 작업의 상당 부분을 맡았다.
-왜 그런데 LG제품으로 안 팔리나. 기술력이 달리는 건가.
기술력은 없지 않다. 오히려 세계 최고다. 다만 브랜드 파워가 없고 기업들이 왜 브랜드 파워를 키워야 하는지 몰라서 그렇다. 디스플레이에는 조금씩 신경 쓰기 시작하는 것 같다. 대기업만 하지 말고 덴마크나 영국처럼 작지만 한 분야만은 세계최고인 회사를 키워야 한다. 일본에 ‘스와다’라는 150년 된 회사가 있다. 일본의 조그만 현에 있는 그 회사가 만드는 게 손톱깎이인데 제품에 큰 변화 없이 조금씩 개선해가며 150년을 생산해왔다. 손톱깎기 하나에 15만원 정도인데도 불티나게 잘 팔린다.
-향후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지금 매출 11억원 정도인데 내년에 이걸 10배 이상 키울 생각이다. (기자가 놀라서 어떻게 그렇게 키우느냐고 묻자 빙긋이 웃으며) 다 방법이 있다. 기업 서비스 등을 확장해서 글로벌 서비스를 하고 싶다. 우리 사이트 회원들 중에는 중국과 미국사람들도 많다. 아마 주변에 있는 한국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이트를 접하게 된 것 같다. 중국에도 얼리어답터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 제품을 소개하는 코너를 운영하고 싶다. 우리기업이 중국 진출하기가 사실 굉장히 힘들다. 삼성은 중국 진출이 어렵지 않지만 중소기업은 어렵다. 그런 업체들에게 우리가 등용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회사를 키우려면 인원이나 조직도 더 키워야 할 것 같은데.
이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정말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 스스로 그런 사람들이라고 편지는 많이 온다. 하지만 정말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일 같아 보인다. 실제로는 재미만 있지는 않다. 내 취미가 쇼핑하는 거였는데 요즘에는 쇼핑할 필요가 없으니 ‘저지름 병’은 고쳐진 것 같다. 웬만한 기업들이 제품을 시판하기 전에 다 보내주니까. 캐논, 소니, 삼성 등등. 삼성은 홈시어터를 보내준 적도 있다. 사무실 공간도 좁고 해서 대부분 돌려보낸다.(기자가 ‘그런 물건들은 앞으로 챙겨놨다가 달라’고 농담을 던지자 웃으며)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렇게는 못한다. 회사들이 우리에게 서비스를 잘 해주라는 뜻으로 보낸 거니까.

그는 "소비자의 눈 높이를 끌어올리면 제품의 수준도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어떤 일을 하는 건가.
얼리어답터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운영하면서 우리 회원들에게 신기하고 새로운 제품을 보여주고 왜 좋은 제품인지 알게 하는 거다. 또 제품의 트렌드를 읽고 LG, CJ, 소니코리아, 레인콤, 삼성전자 같은 기업에다 앞으로 무슨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짚어주는 역할을 한다.
-기업들에 제품개발 컨설팅을 한다는 건가.
개발자는 아니고 프로슈머(prosumer.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앨빈 토플러가 ‘제 3의 물결’에서 생산의 기획 및 개발, 유통 과정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소비자를 지칭한 개념)의 성격이 강하다. 얼리어답터의 감(感)을 근거로 어떻게 하면 좋은 제품이 나오고, 잘 팔리는 지에 대한 경험이 있으니 그걸 기업들에게 말해주는 거다. 중소기업 같은 데서는 제품을 직접 가지고 오면 어디를 보완해야 할지를 말해준다. 지금까지 컨설팅해준 중소기업은 20~30개가 넘는다. 컨설팅 의뢰가 들어온 건 훨씬 많다.
-최근에 컨설팅해준 사례가 있으면 얘기해 달라.
미국 아이비리그 나온 유학생들이 어느 날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왔더라. 미국에서는 바퀴 달린 가방을 많이 끌고 다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걸 만들어 팔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알아보니 우리나라에서 끄는 가방이 없었던 이유가 도로사정이 굉장히 안 좋아서 그런 거였다. 도로가 울퉁불퉁하다 보니 바퀴가 깨지기 쉬웠던 거지. 그래서 바퀴를 롤러블레이드처럼 튼튼한 걸 달라고 조언해줬다. 그게 ‘휠팩’이라는 것으로 나와 지금 많이 팔리고 있다. 그 제품이 유명 홈쇼핑을 통해 팔릴 수 있도록 마케팅에 관한 컨설팅도 했다.
-스스로 타고 난 얼리어답터라고 생각하나.
나보다 아버님이 더 얼리어답터 기질이 강했다. 아버님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링에서 이사를 지냈던 분이다. 아버님이 여러 가지 최신 물건을 사는 걸 좋아해 집안에 각종 가전제품 등이 최신을 유지했다. 텔레비전과 비디오도 동네에서 처음 집에 들였다. 아버님이 사진에도 굉장히 조예가 깊으신 분이다. 지금도 웬만한 TV를 해체했다 조립도 하실 정도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최신 제품을 사용하고 만져보는 게 너무나 당연한 환경이었다. 어려서부터 제품을 분석하고 비교도 하다 보니 중고교 때나 대학에서든 주변 사람들이 나한테 꼭 물어보곤 했다. 삼성 다닐 당시 PC 조립 붐이 불었는데 사람들이 하도 물어봐서 업무에 심각한 지장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인사팀에 부탁해서 아예 컴퓨터 조립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할 정도였다.
-이 일을 직업적으로 하게 된 계기는 뭔가.
대학 때도 미국에 유학나간 친구들에게 최신 제품을 항상 받아봤다. 자금은 죽도록 아르바이트 해서 벌거나 제품을 받아서 중고 되기 전에 파는 식으로 해서 마련했다. 이게 직업이 된 계기는 우연한 거였다. 매형이 미국 교수인데 당시 박사 과정에서 얼리어답터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 매형이 ‘바로 네가 얼리어답터다’고 해서 내가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뒤 삼성엔지니어링에 입사해 5년정도 다니다 나와 2000년 다른 업체의 웹 페이지를 만들어주는 웹 에이전시(이바닥)를 시작했다. 그 일을 하면서 향후 비즈니스로 할 수 있는 아이디어 5개 정도를 구상했는데, 첫 번째 것이 얼리어답터였다. 이 사업이 커지다 보니 나머지는 못하게 됐다.
사실 그가 전공인 건축에서 얼리어답터로 ‘전향’한 데에는 꽤 알려진 사연이 있다. 95년 그가 지금의 아내인 배주은씨 부모님에게 결혼 승낙을 받으려 하자 장모가 반대하고 나왔다. “건축학과 출신은 싫다”는 거였다. 최씨는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당시 유니텔이 주관한 멀티미디어 홈페이지 경진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았다. 대상을 받은 뒤 한 일간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장모에게 보이고 나자 장모의 대하는 빛이 조금씩 달라졌다고 한다. 그의 장모가 아니었으면 그는 아직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살아"..."제조업 살려며 세련된 소비자가 있어야"

최문규씨가 일본 메이아덴끼의 손 꺾는 소리가 나는 제품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우리 기업의 제품 수준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될 것 같은데.
제품에 대한 애정이 많아지고 웬만한 제품들은 대부분 써보기 때문에 어떤 제품이 진짜 좋은 제품인지 알게 된다. 제품에 미쳐 살다보니 느끼는 게 많다. 그 중 제일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는 제조업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나라라는 거다. 그런데 자국 시장이 없다. 소비가 미덕이 아니다 보니 그렇다. 나 같은 사람을 보면 다들 주변에서 월급이 얼마인데 그렇게 사대냐고 다들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소비가 미덕인 나라가 돼야 나라가 잘 산다. 소비를 해야 공장이 돌아가고 신상품이 나오고 돈이 회전된다. 소비가 미덕 아닌 분위기는 굉장히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지금 지는 나라라고 하지만 제조업으로 몇 십년 해먹었다. 나는 일본 다음이 한국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으로선 일, 이 년도 못 해먹을 판이다. 중국 게 안 좋은 물건이라고 다들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중국 물건들 좋은 건 아주 좋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기면 다시는 선두 못한다. 우리 제조업이 확 살아야 한다. 국내의 소비와 빠른 유행 흐름을 타고 개발된 핸드폰이 해외에서도 잘 팔리듯이 모든 제품이 이런 식으로 돼야 일본 다음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할 일이 너무 많다. 우선 소비자들의 안목이 높아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소비자들은 너무 주관이 없다. 자기에게 맞고, 좋은 제품을 사는 안목이 없었다. 내가 하려 한 게 그런 일이다. 우리 소비자들에게 진짜 좋은 물건이 뭔지 보여 주자.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그 눈높이를 맞추자면 기업도 좋은 제품을 만들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제품의 전반적인 수준이 올라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거다. 지구상에 우리나라처럼 중소기업이 기 못 펴는 나라는 없다. 중소기업들의 제품 아이디어는 좋은데 제품을 꽃 피워낼 수 있는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없다. 우수한 중소기업 제품을 발굴해서 시장에서 꽃 피울 수 있도록 코치라도 하자고 얼리어답터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동호회 사이트로 출발했는데.
처음엔 긴가 민가 했다. 얼리어답터가 얼마나 있을까 한 번 모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2001년 8월에 사이트를 열었는데 일파만파로 너무 커졌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니 그동안 얼리어답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주눅 들어 살았던 것 같다. 이 사람들에게 파이어니어의 역할이 있다고 하니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사이트를 운영하다 보니 분위기가 도를 넘어 내가 거의 ‘교주’처럼 되는 걸 느꼈다. 이메일이 하루 500 통이 넘게 오기 시작했는데 심지어 어떤 여자를 계속 사귀어야 하는지를 내게 물어봤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다. 결국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이 제품이 가진
문화가 뭔지를 짚어보고 싶었다. 웃기면서도 안타까운 예인데 인터넷에 연결해서 개에게 밥을 주는 장치를 개발한 업체가 있는데 65만원 짜리 그 제품이 국내에서 겨우 8개가 팔렸다. 결국 그걸 일본 후지쓰에 팔았는데 후지쓰는 NTT(한국통신과 같은 일본의 기간통신사업자)와 함께 그 제품을 130만대나 팔았다. 제품을 사용하는 배경문화를 잘 읽어내느냐에 따라 제품의 붐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된다.
일본에 ‘메이아덴끼’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가 만든 게 24시간 노크 소리나 박자 맞추는 소리를 나게 하는 ‘노크맨’ ‘비트맨’을 만들었다. 하루 종일 손 꺽는 소리 나는 기계를 만들기도 했다. 이 회사 모토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만 만들자’는 거다. 그런데 이게 팔린다. 사람들이 재미로 사는 것이다. 이거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이 회사가 토이 쇼(toy show)에 참석하느냐 여부에 따라 몇 만명 인원이 왔다 갔다 한다. 쓸데없는 건데 참 잘 만들었다. 이 회사는 제품에 자기 색깔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컨설팅 해달라고 해서 만나보면 MP3플레이어 만드는 사람이나 김밥 납품 하는 회사나 모든 과정이 똑같다. 자기 색깔이나 독창적 아이디가 없다. 대기업, 심지어 삼성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색깔, 아이덴티티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삼성도 색깔이 없다고 했는데 일본 회사와 비교해서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삼성이 소니를 이겼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소니 한창 때 제품을 보면 그래 이게 소니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소니의 광고 문구가 ‘잇츠 소니(It's Sony)' 아닌가. 그 문구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사람들이 써보면 자연스레 그런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이게 삼성이야’ 하는 제품이 어디 있나. 삼성 제품이 잘 팔리지만 ‘그래, 삼성 최고야’ 하는 게 없다. 약간은 장인 정신 같기도 하고, 하나에 미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색깔 같은 건데, 이런 건 죽도록 외국 것 벤치마크해서 베끼는 방식으로는 절대 안 나온다. 자기 색깔을 내는 회사는 잘 된다. (국내에는 그런 회사가 없느냐고 묻자) 아이리버 같은 회사가 그런 걸 잘 한다. 삼성도 그런 게 일부 제품에는 있다.
"색깔 뚜렷한 기업이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

-한국 경제가 잘 되려면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기업이 많아야 한다는 건가.
색깔이 뚜렷한 기업들이 대부분이어야 우리 경제가 산다. 우리가 가진 자원이 결국 사람뿐인데 그런 사람들을 활용해 좋은 제품 만들어서 세계에 뿌려야 한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이 진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코치를 해줘야 한다. 미국도 그렇고, 일본은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그렇게 돼 있다. (자신이 쓰고 있던 태블릿PC를 가리키며) 무척 속상한 게 이것도 HP에서 출시하지만 LG에서 기획과 디자인 작업의 상당 부분을 맡았다.
-왜 그런데 LG제품으로 안 팔리나. 기술력이 달리는 건가.
기술력은 없지 않다. 오히려 세계 최고다. 다만 브랜드 파워가 없고 기업들이 왜 브랜드 파워를 키워야 하는지 몰라서 그렇다. 디스플레이에는 조금씩 신경 쓰기 시작하는 것 같다. 대기업만 하지 말고 덴마크나 영국처럼 작지만 한 분야만은 세계최고인 회사를 키워야 한다. 일본에 ‘스와다’라는 150년 된 회사가 있다. 일본의 조그만 현에 있는 그 회사가 만드는 게 손톱깎이인데 제품에 큰 변화 없이 조금씩 개선해가며 150년을 생산해왔다. 손톱깎기 하나에 15만원 정도인데도 불티나게 잘 팔린다.
-향후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지금 매출 11억원 정도인데 내년에 이걸 10배 이상 키울 생각이다. (기자가 놀라서 어떻게 그렇게 키우느냐고 묻자 빙긋이 웃으며) 다 방법이 있다. 기업 서비스 등을 확장해서 글로벌 서비스를 하고 싶다. 우리 사이트 회원들 중에는 중국과 미국사람들도 많다. 아마 주변에 있는 한국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이트를 접하게 된 것 같다. 중국에도 얼리어답터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 제품을 소개하는 코너를 운영하고 싶다. 우리기업이 중국 진출하기가 사실 굉장히 힘들다. 삼성은 중국 진출이 어렵지 않지만 중소기업은 어렵다. 그런 업체들에게 우리가 등용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회사를 키우려면 인원이나 조직도 더 키워야 할 것 같은데.
이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정말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 스스로 그런 사람들이라고 편지는 많이 온다. 하지만 정말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일 같아 보인다. 실제로는 재미만 있지는 않다. 내 취미가 쇼핑하는 거였는데 요즘에는 쇼핑할 필요가 없으니 ‘저지름 병’은 고쳐진 것 같다. 웬만한 기업들이 제품을 시판하기 전에 다 보내주니까. 캐논, 소니, 삼성 등등. 삼성은 홈시어터를 보내준 적도 있다. 사무실 공간도 좁고 해서 대부분 돌려보낸다.(기자가 ‘그런 물건들은 앞으로 챙겨놨다가 달라’고 농담을 던지자 웃으며)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렇게는 못한다. 회사들이 우리에게 서비스를 잘 해주라는 뜻으로 보낸 거니까.

소니 리브리에를 들고 제품의 특징을 소개하는 최문규씨.
그의 뒤로 신기한 제품들이 많이 쌓여 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가 사무실 곳곳에 놓인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사탕이 들어있을 것 같은 조그만 양철통을 열어 보라고 해서 속으로 ‘사탕 안 먹어도 되는데...’하며 무심코 열었던 기자는 깜짝 놀랐다. 거뭇거뭇한 스펀지 막대 같은 게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던 것이다. 기자가 ‘아이쿠’ 하며 놀라자 그는 “여기 온 기자들이 다들 한 번씩 당하고 간다”고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가 소개해준 제품들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소개한다. 먼저, 소니의 리브리에라는 전자책(e-book) 독서기. PDA와 노트북의 중간 크기인데 종이 위에 얇게 코팅된 스크린이 특징이었다. 코팅막 아래 잉크에 전기 충격을 줘 잉크 방울들이 헤쳐 모이는 방식으로 화면이 구성되도록 했다는것. 액정 화면이나 LCD모니터와 달리 옆에서 봐도 종이에 쓴 것처럼 글씨가 또렷하게 보였다. 더 놀라운 것은 AAA배터리 네 개면 6개월이나 쓸 수 있다는 점. 에너지 소모가 적어 친환경성이 돋보이는 제품이었다.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릴 수 있는 치약세트.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번호가 적힌 치약을 구멍 뚫린 종이 상자에 숫자가 보이도록 배열해 이성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한 제품. 예를 들어, 상자 구멍으로 자신의 핸드폰 번호가 일렬로 보이도록 해 ‘계속 연락해주면 좋겠다’는 뜻으로 이성에게 선물할 수도 있다. 키위맛, 바나나맛, 꿀맛 등 번호에 따라 치약 맛도 달라 재치 있는 선물용으로 안성마춤. 일본 마거릿 조세핀 제품이다. ‘재미가 제품의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그의 말이 실감나는 제품이었다.
출처: 미디어 다음